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4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

시편 123편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봅니다.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너무나도 많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평안하게 사는 자들의 조롱과 오만한 자들의 멸시가 우리의 심령에 차고 넘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은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가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삶,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삶, 억울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삶... 그런 삶을 살면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믿음을 붙잡고 성전으로 가는 중인 것 같다.

위대한 문학은 슬픔과 고통 중에 태어나는 것인가?

이 시편도 조롱과 멸시를 당하면서도 대항할 힘이 없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소연하는 사람의 노래다. 

설사 대항할 힘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안하고 끙끙거리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음하는 사람의 노래다.

1.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나?

(1) 대항할 힘이 있는 경우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인생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시라서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 그러나 푸쉬킨은 어처구니없이 죽었다. 자신의 아내와 러시아 근위대 소위 단테스 남작과의 염문이 돌자 이를 치욕으로 여긴 나머지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총 빨리 쏘기 결투’에서 시인은 군인을 이기지 못했다. 푸시킨은 하복부 오른쪽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후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치욕과 모욕을 참지 못했기에 그의 문학적 재능을 더 이상 꽃 피우지 못했다.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경멸과 모욕을 둘러싼 결투로 유럽에서 수 십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7세기 스페인에서만 무려 5,000명이 죽었다. 1834년 독일에서는 자신의 콧수염이 조롱당했다고 한 육군 장교가 결투를 신청해 결국 둘 다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 그나마 대항할 힘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대항을 한다. 결국은 파국이다.

(2) 그러나 시편 123편은 그런 힘이 없는 사람들의 노래다.
그저 조롱과 멸시를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노래다.

역사적 배경은 느헤미야 시대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으려 할 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의 조롱

4:2-3절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 하고 빈정거렸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암몬 사람 도비야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힘으로 당할 수 없었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하소연 할 수 밖에 없었다.

4:4-5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이런 기도를 한 후 성 쌓는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평안하게 사는 자들의 조롱과 오만한 사람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에 그저 하나님께만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노래다.

(3) 대항/압도할 힘이 있지만 그것을 쓸 수 없는 경우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항/압도할 힘이 있지만 그것을 쓸 수 없는 사람의 경우.

왜? 하나님을 믿으니까!

원수 갚는 일은 내게 맡기라고 하시니까.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시니까.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니까...

그래서 부르르 떨기만 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어떤 자비?

하나님께서 막아주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명예를 회복해 주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 힘으로 대항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힘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힘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4) 아마도 마지막 (3)이 예수님의 경우였을 것이다.

십자가로 가는 길에 마귀는 예수님을 가장 힘들 게 하려고 작정하였는지, 사람들을 동원해서 온갖 조롱, 모욕, 멸시를 퍼부었다.

눈을 가리고 누가 때렸는지 알아봐라, 얼굴에 침을 뱉고 손바닥으로 때림, 욕설을 퍼부음, 홍포와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조롱함, 너 나 구원해 봐라. 그러면 믿겠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을 사용할 수 없기에 온갖 조롱과 멸시를 참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하소연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다.

2. 시 123편의 경우

(1) 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의 노래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다. 하늘의 보좌에서 다스시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의 모든 악, 음모, 부조리, 폭력, 비열함을 다 꿰뚫어 보고 계시면서, 

하나님만의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자기를 보호, 명예/손실을 회복시켜 달라고 호소하였다.

(2)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보나?

직유법(~와 같이)으로 효과적으로 전달

상전의 종, 안주인의 몸종과 같은 자세. 게다가 그들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고대사회의 종은 자신의 운명이 100% 상전/주인의 처분에 달려 있는 계급사회였다.

상전은 친절하게 말을 건네주지 않는다.

주로 눈짓이나 손짓으로 의사소통 한다. (최소한의 노력)

그래서 종은 간절하게, 집중해서 주인의 손짓을 지켜봐야 한다. 

말이라면 다른 일 하면서도 들을 수 있지만, 손짓은 집중해서 바라봐야 한다.

바로 그런 자세, 그런 심정을 말하고 있다.

조롱/멸시/모욕을 당해서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지만, 대항할 힘도 없고, 힘이 있다고 해도 맘대로 행사할 수도 없는 답답한 사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심정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님의 처분을 예의주시 바라보는 심정

하나님은 저는 너무 억울하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힘이 있다고 해도 차마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조롱과 멸시를 갚아 주십시오. 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저를 지켜 보호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저버리실 수가 없다.

12/15/2021 수요예배